2016년 2월 22일 월요일

예술은 왜 존재하는가?

예술은 왜 존재하는가?
1. 희망을 위하여 - 그 존재의 아름다움
2. 외로움의 공유를 위하여 (너만 외롭지 않아)
3. 프로파간다 (어떤이유든간에 시대 정치맥락)
4. 사회의 재 균형 사회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
5.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것 (appreciate) 다르게보기/다시보기

나는 영화이론을 공부했고, 이 전시는 나에게 내가 배운 것들에 대한 재조명과 재현에 그 목표가 있다. 영화학교에서의 마지막 학년을 앞두고 내가 배워온 것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몇몇 이론들에 착안하여 "언어-영상" "육체-영상"을 단순화한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이 영상의 전제는 1) 영상에도 몸이 있다 2) 영상은 언어이다 3) 언어는 언어 스스로도 사고한다 (이는 비단 영상언어만의 문제는 아니고 텍스트 언어 음악 언어 춤 언어 등 모든 언어는 그 스스로 사고하는 작용이 일어나곤 한다) 
내가 가상으로 설정한 이 전제 하에서 "영상-나" 는 "자아성찰"을 한다. 이 "자아성찰"의 과정에서 차용되는 것이 고전적인 동양철학 사상인 '논어'이다. 논어는 이미 그 자체로서 자아성찰의 훌륭한 도구가 되지만 왜 그것이 선택되었는가에 대하여서도 두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1) 작가 본인의 개인적 배경과 경험 - 하나.나는 한국인지만 나의 본성(family name)은 오래 전 중국에서 유래한다.(그러나 그것이 내가 중국인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공자의 80대손으로 나를 정의하게 되는 순간 나는 고대 철학자와의 강한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끌림'은 내가 논어를 자아성찰의 수단으로 택하게 되는 것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둘. '하나'의 이유로 작년(2014)년 여름 공자/공씨의 도시인 곡부를 방문했다. 이러한 여행은 나의 정체성의 한 측면에 대한 재인식이기도 하다. 셋. 공자의 가장 중요하게 여긴 가치 중 하나가 '호학 - 학문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는 배움과 학문을 통하여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러한 배움에 대한 열망은 학자-공부하는 사람 으로 구성된 나의 가족적배경과도 연결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자아성찰이란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는 일, 왜 자아성찰이 필요한가 하면 이는 자신의 현재 상황/과거의 상황/미래의 상황과 이상(믿음이나 가치 혹은 목표) 사이를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통하여 메꾸어 나가기 위함이라 판단하였고, 이에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두글자 '호학'을 공자가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2)런던에서 유학하고 있는 내가 종종 동양철학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 가장 자주 만났던 이가 바로 공자였다. 그는 '동상'으로서 학교(킹스칼리지 런던의 몬 도서관)에도 존재하고, 각종 컨퍼런스의 인기인사로서 등장한다. 동양인으로서 서양인의 관심과 애정을 받는 일에 대한 다른 차원의 존경심 그리고 다른 언어로서 표현된 철학이 다양한 해석과 번역을 통하여 소통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존경심마저(내가 이 곳에서 언어때문에 겪고있는 이질감이나 어려움과 함께) 드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스스로 생각하는 영상 언어' 를 영상을 통하여 이야기한다.
전시는 세가지로 구성되는데,
1) 이를 상징할만한 전시품 (꽃과 연필로 사실상 장식적 효과를 가진다)
2) 에세이집(영상에 대한 설명과 사진 그리고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 핑계와 보조설명격이자 글을 쓰는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잃지않기 위함이다)
3) 영상 - 가장 주요한 작업
으로 구성 된다.

영상의 경우 5~6분 이내로 
A -> B -> A' 으로 구성된다.
기본적으로 A와 A'는 텍스트(논어와 나의 말의 결합) 과 사진의 몽타주로 구성되며
B는 영상으로 그날밤 꿈을 꾸었다는 텍스트로 시작된다.

시 몇편 (23 2 2016)

그냥 뭐든지 그렇게 느린 사람이 있다

생각이 너무 앞서나가서 행동이 그걸 따라가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블럭처럼 짜여진 완벽한 내일이
결국엔 진흙처럼 물렁거리며 지나가는게
마음이 아프지만
어쩌면 평생 아주 단단한 오늘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그래도 또 괜찮다고 하는 수밖에
시간은 대부분 많은 일들을 해결해주지만
시간은 또 대부분의 많은 일들을 더 이상 바뀌지 못하도록 정작 겁만 더 많아지고 그래서 결국엔 핑계만 찾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서 너무 명확하고 맞는 말들 앞에서 더 힘이 빠져버렸다

몰라서 안하는 편이 나은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알아야만 하고
알고나면 못하는 거다
아니 알아도 안하는 자신이 가장 한심하다고 느껴져도 
다시 느리게
또 한마리 물고기처럼

(2014. 3.5)


상류층의 꿈

유리로된 자동문을 카드키를 찍고 열어
반들반들한 대리석이 깔린 로비를 지나고
경비원 아저씨와 어색한 눈인사를 하고나서
엘리베이터로 수직상승하는 기분이 그립다
지은지 오십년은 족히된 콘트리트 계단을 매일 오르내리며 생각한다

백화점에서 보풀도 안생기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사이즈도 딱 맞는 코트에
대학생이 들고다닐만한 가방 하나
어디든 걸어갈 예쁜 신발하나 그렇게 자신감 있게 다니고 싶은데
인터넷 쇼핑몰에서산 검정색이 묻어나오는 털코트에 로드샵에서 산 싸구려 스웨이드 신발 카피제품인줄도 모르고 선물로 받은 가방을 들고 다니며 생각한다

이런 내 삶이 자그마치 몇천 몇억을 투자해서 얻은 것이라 생각하니 믿을 수가 없다
지금 내 삶은 고시생이나 워킹클래스만 못하다 영화공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삶과 사회에 대한 비판을 읽게하지만 결국 더 강하게 남는건 욕망이라서, 저 오만한 미드클래스의 말투를 비웃고 싶지만, 나도 저런 옷 한번 입고 좋은 옷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반성해야 되나. 모르겠다
나는 지금 조금 불쌍하다
복에 겨운 소리라는 거 알지만
그래 그럼 불쌍한게 아니라
조금 억울하다
왜 나는 결국 여기에 멈춰져 있는 건지
마음에 안들면 내가 나가 돈벌어오면 되는건데, 그건 못하면서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결국엔 나를 탓하다 보면

부정순환이 시작될까봐

아니야 필요없어 괜찮아 즐거워 행복해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거다
악순환의 연속일지라도 긍정마저 잃을 순 없다

그래서 이건 불편하고 못된 시다
결국 나를 탓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나는 삶이 너무 피곤하다

남이 듣기에 불편하고 못되고 차가운 말들을 하면 안되니까, 그것이 나의 가장 자연스러운 생각일지언정 철저하게 막겠다!
절대로 내뱉지 않겠다!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슬퍼할 이유을 몰랐기에 슬퍼하지 못했고
그래서 차라리 진심으로 잘되기를 빌었지만 솔직히 더 가능한 일에 진심이고 싶었다
근데 이 마음은 너무 차가워서 차마 꺼냈다가는 누군가를 상처줄까봐 그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마음이 아파서 꺼내지 못했다.

나는 답장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라는 거야. 그말이 맴도는데 그말도 하지 못했다 의미없는 말에도 그저 웃으며 보내는 것이 나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뭐 이렇게 삐뚤어졌냐는 소리도 나는 듣고 싶지 않고 세상에 불만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산다 또 그 무한한 타자화와 객관화의 결과인 나는 겁쟁이가 된다. 그런데 그게 옳다. 더 도덕적이다. 아마도 착한아이이고 싶은 욕망이 훨씬 더 크다. 그래서 이 차가움을 더 어색한 웃음으로 덮어서 위기 모면!
나는 더 차가워진다 손도 발도 마음도
혈액순환이 잘 안 된다.
뛰자! 뛰자! 뛰자! 

(2014 . 2. 27)


워터파크의 파도풀인줄알고 뛰어들었더니 헤어나올 수 없는 바다의 물살이었고 
일 년동안 그렇게 튜브랑 구명조끼에 기대어 죽지도 않고 간간히 튜브에 편히 앉는 법도 
발장구치는 법도 배우면서 간절하게 이 여정은 언제 끝날지를 기도했지만 
드디어 밟은 육지에서 사람들은 즐겁게 놀았냐며 고생했다 말해주었지만
나는 내심 그 시간동엔 수영을 배우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직도 육지에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도착한 후에는 다시 수영을 배우러 바로 떠나게 될터인지라 
양쪽 어깨에 얹어진 부담도 피가 잘 안도는 이 다리도 내가 다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 
그냥 나 딱 일주일만 아니 딱 하루만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건 결국에는 또 일어나 빨래를 개고 아 또 뭘해야할까
끊임없는 목록으로 또 파도에 파도를 만들면서 헤쳐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고 운명을 타고났으니 그 끝에 무엇이 있든지 살아야겠다고 근데 언제쯤 더 반듯반듯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지 평생 충족 못시킬 기대감만 쌓아지고 있고 그래서 그 불만족에 자존감은 낮아지는데 
학교나 가자 노인과 청새치의 싸움보다도 외롭고 덜 효율적인

(2014. 3. 10) 




2015년 11월 25일 수요일

<시나리오>

#1 
솔직히 얼마나 하게 될런지 자신은 없다. 내일 까먹지 않고 기억해낸다면 그 정도만 되어도 성공이다. 지금 당장 무언가 시작하지 않으면 무료함에 파묻힐 것 같았고 어차피 아껴두어도 의미 없을 것 같아 하루에 하나씩 올려보기로 한다.

#7years 
#Scene1 
#콘크리트 도로

좋은 나이를 맞이한 그녀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한적한 도로, 키의 반절정도 오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그녀는 조금 빨리 걷다가 조금 천천히 걷다 멈추었다 다시 빨리 걷기를 반복한다. 
이어폰을 귀에서 벗자 세상이 시끄러워 졌다. 화려한 간판들도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어느 것 하나 그녀의 흥미를 끄는 것이 없다. 마침 전화가 울렸지만 그냥 받지 않기로 했다.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분위기에 심취해 여배우처럼) 눈을 잠시 감고 생각에 빠지기로 했지만 그것도 잠시. 화려한 얼굴을 하고 천사같은 미소를 짓는 여자와 부딪혀 잠깐의 사색마저 방해받았다. 

아 역시 되는일이 없구나. "쯧"

그녀는 나지막히 혀를 찼다.

2015년 10월 13일 화요일

Suffragette (2015)

https://youtu.be/SUKjwIaTZ4Y
https://youtu.be/-JYzgPPoQf0
Meryl Streep Interview on Suffragette

"Deeds, not words"

영화의 여운보다도 메릴 스트립의 인터뷰가 심장을 때렸다.

세상은 결국 다양한 문법과 언어의 교합물 이다.
그런데 그 언어는 때로는 수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기도 하고, 태어난 순간부터 이유없는 폭력 아래로 내몰기도 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원래 그래왔다고 여겨지던 이 세상의 구조는 사실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변화시킬 힘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사실은 투쟁과 싸움의 결과였음을 말해주었고, 그것이 고작 100년도 되지 않은 역사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내가 집착했던 것이 행동이 아니라 언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데올로기적인 신화를 수반하는 몇몇 단어들에 대한 일차원적인 거부감이
당연한 현상과 행동을 직면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메릴 스트립이 말하듯 - 무언가 틀린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본다.

그러나 변화는 용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의 행동의 시작은 또 다른 행동을 포기를 궁극적으로 수반한다. 포기해야하는 것들과 얻어야 하는 것들의 가치와 사회가 구성해 놓은 책임을 디디고 서서 안개 낀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지난 번 Martian을 보면서도 든 생각이었고, 이 영화에서의 에밀리의 죽음을 통해서도 느끼는 바이지만, 지금의 나에게 세월호 사건과 '절망적이고 희망이 없는' 일련의 사건들은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단 한명의 생존에 세상이 움직이는 서사구조를 보면서 300여명의 학생들과 사람들을 바다 한 가운데에 두고 올 수 밖에 없었던 우리나라와, 그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은 무관심과 짜증으로 바뀌었고, 생명을 저버리면서 까지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항하려 했던 사람들의 '행동'들은 세상의 팍팍함과 이기주의 아래에서 묵살당했다. 지금의 우리나라 사회는 더 이상 행동이 세상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패배주의에 휘감겨있고, 눈에 보이는 부조리는 보이지 않는 척으로 일관하는 것이 당장의 삶에 더 이로울 것이라는 판단에 이르게 한다. 극단이 아니라면 관심없음이 평범한 사람들의 가치가 되고, 평범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용기 없는 사람들의 쉽지 않은 미덕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에 대해 생각한다.
현실적인 어려움이라고 말하는 '말'은 문제에 대한 변화의지가 없다는 말과도 같다.
하지만 무엇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할 필요나 가치는 못 느끼고, 아니 필요나 가치는 실감하지만 내가 나서서할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
나는 지금 어디에 서있는가.

나는 여성 감독이 촬영한 이 영화를 정말로 오래간만에 보면서
미디어가 얼마나 남성중심적인 시선을 (멀비가 말한 그대로!) 관객들에게 강요했는지 깨달았다. 관객에 따라서 이 영화가 다른 영화와 얼마나 다른 시선을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프레임으로) 가지고 있는지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정말로 여성의 영화였다 - 예를 들면 남성과 여성을 촬영하고 있는 level과 앵글의 차이, 일하는 여성이 느끼는 갈등과 감정선의 지점을 표면에 드러내고 그것이 영화를 이루고 있는 주요한 담론으로서 작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역시나 당연한 것이다.
폭력은 정당하지 않다.
당연한 죽음은 없다.
그렇다면 명예로운 죽음은 있는가?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판단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미디어를 비롯하여 대중매체가 사람들의 가치를 보편화 시키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것을 원하도록 만들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소수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재분배되지 않는다.

* 글을 어떻게 쓰는가. 말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나는 최근 몇 가지 중요한 인상과 키워드를 적당하게 버무리는 것으로 '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것의 한계를 매일 매일 어설픈 언어 속에서 실감하면서,
이제는 연결되지 않는 모호한 지점을 파고들어서 그것을 아주 명확하고 엄밀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말이 되는 말'을 하는 것을 언어 사용의 최대의 목표로 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한다면 나는 이제 알맹이가 있는 언어를 사용할 것이라는 말이 된다.
올해 초 나는 비전과 콘텐츠를 찾았고
여름의 나는 문법을 찾았고
지금의 나는 말을 찾고 싶다.
간극을 채우는 것은 궁극적으로 학문이 된다.
안개꽃으로 공간을 채우지 않겠다.
그것이 내가 삶을 대하는 기존의 태도였다면
나는 차라리 그것을 더 명확한 것들의 나열을 통해 비어야 할 공간을 비워두겠다.

** Vote for Women ;
나는 현실의 문제를 눈감고 있는가
반문하라




2015년 10월 11일 일요일

Right Now Wrong Then

2015 BFI London Film Festival,

Right Now, Wrong Then (2015, Hong Sang-Soo)

Cine Lumiere Screening (11/10/2015)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한번에 이 영화의 제목을 맞게 말할 수 있을까.
홍상수 감독의 그 신작 보았어요? 하면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혹은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다? 하며 버벅거리는 '시네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 감독은 이상한 실소를 뿜었을 것 같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그의 카메라에 담긴 것들은 혹은 그가 카메라에 담은 것들은 대부분 위선적이다. 감정을 살려내려는 줌인이 없어도,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없어도, 늘 반복적인 '홍상수'의 플롯 안에서 그는 계속 새로운 것들은 위선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한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그 첫번째와 두번째는 미묘한 지점에서 다르지만 전혀 다른 뉘앙스를 주는데,
그것이 엄밀하게 무엇인지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읽기에는 첫번째와 두번째가 (물론 완전히 다른 촬영이었겠지만) 같은 평행적 상황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읽었고 - 그러니까 다른 이야기는 아니라고 판단했고,
대사의 길이나 속도의 차이역시 보는 사람의 심리에 따라서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하에 나는 그 둘의 '거의 비슷함으로 같다' 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분명하게 다른 것들은, 첫번째 파트는 매우 홍상수다웠다는 것이고 두 번째 파트는 또 다른 홍상수 다웠다는 점이다. 말로 정리하기 매우힘들지만, 1부에서의 남자 캐릭터가 더 익숙했다면 왜일까.

힘들게 상징과 색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고,
외국 관객들과 한국인 관객들이 다른 포인트에서 웃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홍상수의 영화가 좋은 이유는 역시나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웃음 포인트와 분명 어른들의 인생의 어떠한 낮과 밤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의 영화는 기대되고 기대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