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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9일 목요일

[영화] While We're Young 2014

While We're Young 2014
Noah Baumbach / Ben Stiller / Naomi Watts / Adam Driver / Amanda Seyfried

Noah Baumbach 감독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이주 정도 전, 프랑스 여행을 앞두고, 프랑스 누벨바그 수업의 현대적 리퍼런싱 격인 (혹은 그렇게 설명 받았던 ) Frances Ha (2012)를 보게 된 이후로다. 그 영화는, 정말로 유쾌하고 어쩌면 '데이트 못하는 여자'의 심리를 프랑스틱한 방식으로 - 혹은 프랑스 영화 스러운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지을 법한 그 애매모호한 웃음을 떠나지 못하게하는 그런 류의 영화였다. 나는 주인공 Frances에 상당히 영감을 받은 나머지, 여자가 그려내는 데이트 못하는 여자 삼부작 정도를 만들면 어떨까. 뭐 그런 생각에 이르기까지 한 것이다.

아무튼 나는 저 감독의 배경이나 저 영화의 다른 맥락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영화는 분명히 시네필의 영화였다. 영화 이론과 영화사에 대한 이해 그리고 영화과에서 자주 떠오르는 주요한 고민과 토픽들을 있는 그대로 대사로서 드러내거나 했다.

그래서 While We're Young 이 영화가 그랬다.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최근 행복하다 못해 그 행복함에 완전히 녹아나지 못하는 황금기의 젊은이가 가지는 사치스러운 고민들을 약간은 긁어줄까 했던 것이고, 영화는 제목처럼 젊을 동안에를 그렸다기 보다도 'Success-Oriented' 하지만 'Success'하지 못한 영화계 중년 부부의 이야기였다. 여기서 끌어온 몇가지 리퍼런싱은 이번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만들기에 있었는데, 에롤모리스나, 에이젠스타인이나, 나오미와츠의 아버지로 나오는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의 '진정성'과 '진실/Truth'에 대한 강연이나, 벤 스틸러의 '북극의 나누크'에 대한 언급이나, 여러모로 지난 학기의 다큐멘터리 수업의 주 된 주제 였던 'One has to distort a thing to catch a true sprit'이라는 (이것은 나의 에세이 주제였다.)와 맞물리고 있었다. 하지만, 말하자면 그것은 영화의 곁다리거나 영화를 좋아하거나 공부하는 이들에게 재미를 주기위한 소스같은 정도로 곁들어져있고 핵심은 역시나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중년 부부가 한창 때를 살고 있는 - 한 창 때의 늘 무언가를 만들고 움직이고 도전하고 있는 젊은 부부를 만나 느끼는 감정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의 동년배들은 모두 아이를 가지고, 아이를 가지는 일이 자신의 모든 세상을 변화한다고 말하고 실제로도 그들의 삶은 아이를 중심으로 변하는 듯했다. 나의 가장 좋은 친구는 더 이상 그 친구가 아니고 (이러한 주제에 대한 - 당연하지만 어쩔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친구사이의 변화 - 에 대한 고민은 Frances Ha에서도 잘 나타났는데, 사랑보다도 더 미묘한 우정의 변화를 그린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자신과 자신 주변과의 관계에 묘한 마찰/어색함/어울리지 못함 이라는 상황에서 구출해줄만한 신선함을 25세의 젊은 부부에게서 찾은 것이다. 25세의 젊은이들에게서 그들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이켜 보게 되다가도, 변해버린 자신들의 사랑이나 관계, 진전하지 못하는 일에 지치기도하고, 젊은이들과 어울리면서 익히고 배우게된 새로운 태도들에게서 좋은 영감을 받게된다. 이러한 변화를 그려내는 데 있어 2014 - 2010s의 유물인 스마트폰 '아이폰'이라고 하는 도구는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되는데, 정말로 10년 후에 의도적이고 동시에 자연적인 기술품의 반영이 이 후 어떻게 받아드려질지 그들을 촬영하는 동시에 이미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른들은 밥먹으러 모여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궁금한 것이 생각나면 검색해버리고, 중요한 회의를 하는 중에 울리는 메시지음은 예전엔 rude했지만 이제는 accepted 된다. 그런데 이 젊은이들은 우리들은 페이스북을 하지 않고, 타자기를 쓰고, 아날로그 음악을 들으며, 궁금한 것은 찾지 말고 그냥 모르는 채로 두자. 라고 말하는 것이다. - 참 젊은이들은 왜 그러는지 모르지만, 나를 포함하여 아날로그는 이 시대의 것이 아니기에 더 cool해 보인다는 착각에 빠지거나, 아니면 실제로도 현대의 물건들은 늘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나를 피곤하게 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여 약간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모티콘을 치는 방법, 약어를 쓰는 방법을 알아내어 즐거워하는 부모님이나, 페이스북을 통하여 소통하고 SNS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수업을 기획하는 교수님들은 참 좋아진 세상의 혁신에 더 들떠있어보이지 않나. (그 와중에 어른보다 더 어른같은 표정을 가진 어린아이가 아이폰을 사용하여 전화를 거는 장면은 '그래도 이건 좀 아닌데...'하는 생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벤스틸러가 '내가 너의 거짓을 다 폭로해주지' 하며 신나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젊은 다큐멘터리 필름메이커'로서 가장 '진정성넘치는 방식으로 진실을 추구해야할' 바로 너가! 사실은 다 사기를 치고 있었다니, 이런 귀신이 곡할 노릇이 있나, 거짓을 알아낸 벤 스틸러가 흥분해서 파티장에 돌아와 다큐멘터리의 거장 앞에서 이러한 얘기를 했을 때 아무도 그것을 문제삼지 않은 것은, because that is the way it is 였기 때문이다. 벤 스틸러 캐릭터가 믿고있었던 무언가가 -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믿었던 '말하자면 환상 같은 기준이' 그다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장면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나누크도 그렇지 않던가. 가짜의 이글루와 세트장에서 액터들과 함께 촬영된 다큐멘터리라고해서 다큐가 아니고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분명의 그러한 비밀이 폭로되었을 때 효과는 많이 반감되지만, 하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은 눈에 더 많이 보이는 것 더 많이 이야기 되는 것을 믿고, 비밀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경우에는 알아도 모른척 하거나 그냥 눈감고 넘어가준다. 아니 뉴스에는 사람들은 충격적인 비밀이 폭로되기를 기다리며 그것을 미친듯이 물어뜯고 사냥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약간의 비밀 혹은 조작이 더 중요한 것을 말하기 위한 유용한 장치라면 어느정도는 허용된다. 하지만 이 것을 허용한다고 말하는 순간, 약간의 비밀과 약간의 조작은 기준 없이 불어나, 더 중요한 것을 압도해 버릴지 모른다고 하는 위험을 담보하게 된다.
1년후 벤 스틸러는 그는 나쁘지 않고 젊었다고 말하는 것에, 반사적으로 나는, 나는 지금 이 순간 젊지만 저렇게 살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이 다시 한번 나를 긁었다.

2015년 4월 8일 수요일

[영화] 신데렐라 Cinderella (2015)

Cinderella (Kenneth Branagh, USA, 2015) 

영화관에 가서 볼 생각은 없었는데, 마침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수다를 떨다보니 우리의 어깨에 얹어진 스트레스를 풀어줄만한 가벼운 영화가 보고 싶었고, 아마도 그 친구는 많은 이들이 보는 영화를 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Tottenham Court Road의 오데온 영화관을 가는 일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예전에 다니던 학교 근처에 그 때 함께하던 친구와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이미 약간은 향수에 젖어있었다.

신데렐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일단은 이 영화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1) 나는 이 영화가 Frozen Fever의 얹어팔기라는 것을 몰랐다. Frozen Fever를 기대하지 않고 갔기 때문에 더 즐거웠고, 더 재미있었다. 엘사가 한번 재채기를 할때마다 화면이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으로 가득했다. 뒷자석의 꼬마가 나 저거 사달라고 엄마에게 떼쓰는 것 마저도 나에게 동심을 일 깨워 줄만한 그런 것이었다.

2) 신데렐라는 ... 주인공이 더 예뻤으면 좋겠네 어쩌네. 내가 보기엔 충분히 예뻤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영화는 그저 그랬다. 말하자면 별 두개 반정도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평을 하기보다도 이 영화가 불러 일으킨 몇 가지 질문/키워드 들이 있다.
- Spectacle : 화려한 장식과 옷, 와이드 스크린과 로우앵글에서 세로로 빛나고 있는 여성 - 변신한 신데렐라' - 는 바람과 사라지다의 비비안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 만큼 화려하고 'spectacle'한 여성을 어떻게 하면 그려 낼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이 영화는 정말로 잘 알고 있다. 궁전의 무도회 장면, 궁전 밖의 정원 장면을 찍어내는 방식은 그야말로 클래식한 스펙타클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 영화가 타겟으로 하고 있는 관객이 아니어서 일까, 왜 나는 더 이상 이러한 방식이 정말로 웅장하고 압도당할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가. 지난학기 내내 크라카우어의 장식, 의지의 승리의 스펙타클과 헐리우드에서의 재사용 등에 대한 '(영화 읽기가 아닌) 영화 보기'의 경험에 도움이 되지 않는 어설픈 이론들이 나를 방해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나는 심지어는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신데렐라의 파란 드레스도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더라. 그나마 계모와 쌍둥이 같은 두 언니들을 꾸며내는 소품과 의상들은 돈을 많이쓴 뮤직비디오 처럼 꽉차보였는데, 신데렐라는 시종일관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무드를 연출해줄 조명만 금발머리에 반짝이고, 화려한 장면들은 스펙타클로 채워졌지만 스펙타클은 없었다. :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말로 잘 아는데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아마 이러한 기분에는 의문스러운 몇 가지 선택들 때문 이었을 거다.
- 의문스러운 선택들 Why? 왜 그랬을까. 아마도 잘하면 좋은 각색 어설프면 어설픔으로 끝날만한 것이지만,
why? 어설픈 코미디(변신장면, 코미디 요정) - 정말로 실망스러웠다. 분명히 웃을 수 있을만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었으나, 나는 신데렐라의 변신이 우스꽝스러운 거위와 도마뱀이 꾸역꾸역 변신하고, 요정과 신데렐라가 갑자기 커져버린 호박에 눌려 찌그러지는 장면이 아니라 가장 화려하고 가장 아름답고 나의 환상의 끝판왕을 충족시켜 줄만한 'the fantasy'! 이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인자한 할머니가 나와서 신데렐라를 완판녀로 만들어 줄만큼 예쁜 아이템으로 아기자기하게 드레스업해주길 원했던것 같다.
what? 그럼 여기서 또 질문하나. 나는 이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했는가? 둘 중 하나다. 끝내주게 좋은 각색 - 약간의 사회적 메시지, 블랙코미디스러움, 세련미 넘치는 화면 OR 동심판타지 충족의 끝판왕, 클래식의 완성, 이것이 디즈니 이데올로기다 다들 부럽지?? 신데렐라 되고싶지?라고 말하는 디즈니 of 디즈니...), 그런데 결국엔 애매~하다. 신데렐라라도 하려먼 적당히 저 정도 이쁘던지, Be Kind Have Courage라고 스스로의 의지와 성격을 다스리지만, 결론은 예쁘고 좋은 부모님에게서 태어나서 왕자님 눈에 나는게 성공이네, 그런데 신데렐라 보면서 너무 바라는 것도 많다. 그냥 보면 될텐데...
why? 그래도 여전히 문제적인  동정심(?)을 일으킬만한 계모 캐릭터 : 행복을 바라는 두딸 있는 재혼녀. 그녀의 연기나 의상이나 심지어는 그녀를 촬영한 방식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원작의 캐릭터보다는 입체적이나, 정말 좋은 캐릭터가 될 만큼은 입체적이지 못하다. 그래도 이 여자마저 없었다면 참 심심했을 것 같다는 생각.
what..? 무도회 장면 / 왕자와 신데렐라의 거슬리는 Sensual Touch 왜 저러는건가. 12세관람가에서 왕자가 신데렐라의 허리를 잡는 장면을 클로즈업한다던가 춤추는 동안 공주의 애매한 표정을 보여준다던가. 감독이 개인적으로 신데렐라의 성인판 - 막장으로 인생 한방에 핀 신데렐라 (불여시)와 욕망에 불타는 계모 (재혼녀) 라도 찍고 싶다면 그건 자유지만, 이상한 뉘앙스를 은근 풍기는 것 마저 난 '윽 싫어' 였다. 아니면 이것도 내가 obssessed by Hollywood Male Gaze..?이런건가...


결론은 참 애매모호하고, 케이블에서 자주 만날만한 영화였다.

2015년 1월 25일 일요일

[영화] 액트오브킬링 ACT OF KILLING

The Act of Killing , 2013, Joshua Oppenheimer

이런 영화를 봤다.
위의 장면을 캡쳐한 이유는, 영화 내내 떠올랐던 Werner Herzog를 화면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에서 피해자들이 가해자인 안와르에게 메달을 건네면서 우리를 죽여 천국에 가게해주어 감사하다고 말하는 장면이 그랬고, 중간중간 의도된 인터뷰 장면들 - 의자를 가운데에 사물을 주변부에 색상과 분위기가 어우러지도록 배치한 장면들 - 이 그랬다.

(The Act of Killing)

(Grizzly Man, Herzog)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장면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액트오브킬링의 인터뷰장면을 보면서 계속해서 Herzog의 인터뷰장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는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니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것의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하는 아주 주변부의 사소한 것을
영화를 공부했다는 이유만으로 보란 듯이 찾아내 보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공부와 발견에 대한 기록을 블로그에 해보고 싶기 때문에
저 한 장면이 나를 블로그에 글을 쓰게한 동기가 된다.
그래서 나에겐 의미가 있다.


일단 영화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1. '가해자'의 역사. 그리고 '영웅'의 역사
나는 며칠전 수업에서 보게된 장군의 아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는 Gangster지만 '장군의 아들'아닌가, 일본놈과 맞서 싸운다.
장군의 아들 김두환 역시 역사 속에서 사람들을 위해 일본놈과 맞서 싸운다는 이유로
그의 폭력이나 위협이 정당화 되었고, 심지어는 멋진 영웅으로서 캐릭터화 된다.

물론 이 영화의 역사적 사건도 그렇고 인도네시아의 현재 상황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그들은(폭력배 - 판차실라 청년회, 프레만) 공산당을 대학살한 대가를 치룬 적이 없다. 아직도 권력을 쥐고 있으며 사람들을 위협하지만 정부의 입장에서는 대학살을 - 숙청이라 부르고 일견 정당하고 합당하다고 말한다. 그들이 한 일이 나쁜짓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고문하고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을 강간하고 집을 불태우고, 그들의 가혹행위를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그들이 악몽에 시달리고 술과 마약으로 '살생'의 기억을 잊으려는 노력과 그만큼 더 강한 '종교적 수준'의 이념이라는 이름의 힘이 그들의 일들을 정당하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들이 했던 일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고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공산주의자이기때문에, 숙청하고 사라져야할 대상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이 당연해진다. 

이 영화가 특별해지는 것은 이러한 사건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다루지 않고 가해자의 입장에서 다룬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입장은 분명하게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고 있고, 그 말에는 '나쁨'과 '좋음'의 경계를 그려내고 있다는 말이 내포되어있다. 아직까지도 권력을 지닌 가해자와, 가해자가 말하는 가혹행위 - 사실은 이질적인 장면들이 넘치는 이 영화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2. Sympathetic 
그래서 이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한 대신에, 주인공 Anwar에 대한 인간적인 sympathy 역시 담아낸다. 사실 동정이라고 말하기는 뭐하고, 비인간적인 일을 일삼은 Anwar를 인간으로 그렸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특히나 마지막에 구역질을 하는 모습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는 점이 그렇다. 사실은 영화의 전체적인 톤에 깔려있는 이 Sympathy에서 나는 Herzog를 발견했는지는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가해자들에게 대학살을 재연해보라?

영화는 주로 이러한 문구로서 홍보되었는데,
내가 저 문구를 만나기 전에 영화를 보게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저 문장에서, 난감해하는 가해자의 얼굴이 그려지지만,
영화에서는 웃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도 대학살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이들을 만나게된다.
물론 난감해하는 장면들도 종종 등장한다. 중국인이었던 아버지가 대학살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죽고 시체로 돌아온 이의 이야기를 눈앞에서 듣는 것, 그리고 자신이 죽였던 바로 그 방법으로 고문당하고 죽는 장면을 촬영하는 것. 재연만으로도 휘감는 공포. 그 공포가 그들이 했던 일에 대한 대가라고 한다면,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3. Act of Killing
그러니까, 이렇게 난감하고 난해한 상황을 던져준 것 만으로도 생각할 거리가 불어나지만,
결국엔 The Act of Killing 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비단 비교적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학 '학살'뿐만 아니라
전쟁, 범죄살인 그리고 자살까지도.

자연재해에 의한 죽음이나, 병으로 인한 죽음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 사람이나 사회에 의한 죽음들은 사실은 다 비슷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영화 마지막에 Anwar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들었다. 이 것이 정말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영화였다면 그렇게라도 끝내야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각종 범죄자들이 많지만, 모든 살인행위가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도 어떤 순간에 나라의 부름에 따라서 살인행위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이. 혹은 나 역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늘 존재해왔다는 것. 에대해 생각해본다.
특히나 모두가 군대에 가야하는 현재 전쟁 - 휴전이지만 - 중인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또 이런생각이 든다.
나의 세대의 가장 큰 공포는 무엇인가.
과거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세대는 일제강점기 -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었고, 그리고부모님 세대는 독재정권 밑에서 데모하고 싸웠다. 말하자면 우리 바로 직전 세대까지만 하더라도 늘 이러한 고문과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눈앞에서 겪었던 세대다.
나의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책에서나 배웠으며, 간절하게도 내가 살면서 겪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다. 하지만 늘 직감적으로, 우리 세대도 언젠가 전쟁을 겪게 될 것만 같다. 어떠한 방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그리고 실제로도, 지금 IS의 일련의 일들이나, 프랑스의 테러나, 시리아의 일이나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영화 속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고, 가까운 북한도 그렇다. 중국의 큰 땅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사실 알 수 없다.
그럼 말을 바꿔야 한다. 나의 세대의 공포가 아니라.
나, 에게 공포는 무엇인가.
아직까지는 고문과 살인의 공포를 경험한 적이 없다.
세계 2차대전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일제식민지시대와 한국전쟁 자료들을 보면서 독재체제 하의 학생들을 보면서 단지 상상하고 마음아파할 뿐이다.
우리 세대의 시위는 비교적 평화로운 촛불시위였으며, 우리 세대의 아픔은 총과 칼보다는 현실의 차가운 벽 때문이 아니었나. IMF이후 겪은 경제위기에서 어제의 동료에게 정리해고당하고, 돈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라는 말 아래서 벌어진 '차가운 사건들'. 
작년의 사건 사고는, 사건 사고들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이어진 더 차가운 시선들, 본질에는 관심 없고 유흥과 놀림거리로 전락해버린 사람 목숨이. 그것이 더 두려웠다.
몇몇 사람들이 놀림감으로 삼아버린 사람의 목숨이. 더 많은 사람들을 꽁꽁 닫히게 했을 것.
말로 물어 뜯고 상처주고 비교하고 경쟁하고 남 위에 서기 위해 노력하는.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일본이라는, 공산주의라는, 독재정권이라고 하는 그런 벽이 아니라. 내 옆의 사람들이 나의 인생이 벽이 되어버렸나. 아니 그런데 그만큼 차가운 사회는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따스함이 넘치는 그런 사회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아직은 살만 한 곳 아닌가. 
그래서 나에게 늘 가장 큰 공포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깜깜한 미래가 가장 두렵다.
그런데 '나'는 또 그런 사람은 아니다. 늘 계획한 미래가 그 나름대로 착착 진행된다.
그래서 나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두렵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살아갈만 할 것 같다.

결국 영화보다는 두서없는 생각으로 마무리 한다. 










2015년 1월 9일 금요일

[갤러리/ 그림 / 영화] Art and Cinema


시험이 끝났다
발로 썼는지 손으로 썼는지는 모르겠고 정신없는 세시간이었는데 그다지 내용이 알차지는 않았다. 저녁약속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피곤해도 오늘만큼은 집에 일찍들어가기 싫은마음에 잡은 약속이다. 그리고 시간이 남아서 내셔널 갤러리에 왔다. 갤러리는 역시나 생각을 정리하기는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곤할때나 우울할때나 멍하니 생각을 그림과 그림사이에 핑퐁 시키며 적당하게 생각의 흐름에 빠져들 수 있다. 비록 하루의 벼락치기였지만 그래도 어제 공부한 것을 배경으로 그림을 마주하게 되었다. 분명 여러번 온 곳인데 올 때마다 새롭다. 여러번 오긴 했어도 자주 온 곳은 아니라 그럴까. 아니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평소처럼 기억력이 안좋이서? 이유야 뭐든간에 난 이 갤러리에 대해 아는건 별로 없다.
어제 외웠고 오늘 쓴 내용인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이다. 기술복제시대에 예술에서 이 아우라는 사라졌다. 아우라란 원체 복제되지 않은 원래의/진정한 예술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말하는데 영화나 사진의 경우에는 복제되어 대중에게서 소비되는 것으로 그 이전의 예술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이 아우라라는 유일무이한 개념이 의미를 잃게된다. 그런데 나는 내셔널갤러리에서 어떤 그림이 아우라를 가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일단 첫번째는, 음 조금 다른 얘기지만 영화이론에 대해 이야기할때 이론가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예술의 영역을 상당히 단순화시켜버린다. 나는 영화를 공부함으로서 그러한 인식체계에 익숙해졌고 다른 예술과 차별되는 차원 온전한 영화적인 문법이 구사되는 예술로서의 영화 개념을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부분적으로 이는 틀린말이 아니다. 클로즈업, 카메라 무브먼트, 편집 과 같은 것은 영상만이 가지는 고유한 성격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막상 내셔널 갤러리에서 이러한 외침이 약간은 겸연쩍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테이트모던이라면 모를까. 근대화의 예술. 근대의 문명을 살아있는 역사를 가진 미술작품앞에서 논하는 일이 약간은 부끄러워졌다. 맞다. 영화는 인문학의 총아가 될 자격은 있다. 그런데 분명 멈추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동감있게 살아 움직이는 그림들과 프레임화 되어있음에도 상상할 수 있는 off screen space를 그림에서 만나게 되었다. 약간의 틀어진 입술 하늘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그저 그런 종교화를 얼마나 생동감있게 심지어는 발칙하게 만들어주는지 또 새삼 감탄하게 되었다. 바쟁이 말한 것처럼 과연 사진의 탄생은 예술의 두가지 추구방향 중 하나, 현실을 그대로 보존하고자 했던, 를 충족시켰을까. 말도안되는 소리. 그래서 사진은 놀랍지만, 그림 앞에서 소리낼 수 없다. 나는 아직 내 귀가 따가워지고 눈이 즐거워지는 사진을 만난적이 없다. 멋진 사진들이 있지만, 나는 더 멋진 그림들을 많이 만났다. 이것은 개인적 경험임으로 크게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물론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재생산하게 된 것 이 주는 의미도 있을테지만...글쎄.
나는 그리고 그림 앞에 서서 생각했다. 이 것이 주는 감동이 아우라인가? 글쎄다. 재미있게도 나는 그것은 인상이나 impression이나 영감 inspiration일 수 있어도 아우라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셔널갤러리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이명박 닮은 얀반아이크의 작품. 그것은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작품이지만 나는 그것의 아우라를 느낄순 없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아서인가. 상징적인 개념이기 때문일까. 아우라라는 종교적 영적 존재의 근원이 유일성 진정성 원조 라고 해석했으나 나는 그 아우라가 오히려 접근하기 힘들고 멀리 있을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비너스 상을 보거나 반 고흐의 그림을 만난다고 한들 나는 엽서나 사진보다 더 선명한 색감과 생생한 질감에 감탄하고 이래서 실물을 보라고 하는구나 느낄 수 있지만, 많은 경우 그것들은 나의 삶에 의미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아우라라는 것이 잘 다가오지 않는다. 또한 언제든지 접할 수 있다라고 하는 대상의 속성은 아우라를 분명 반감시킨다. 이건 그래서 복제의 개념과도 유사할 것이다. 그런데 또 복제되었다고 하여 고유의 기운은 잃는 것은 아니고, 아무튼간에 생각할 수록 복잡하다.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루벤스의 삼손이 머리카락 잘리는 장면. 색감때문에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지만 스토리를 들었고 표정 하나하나를 보게 되어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인상적이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갤러리를 나가면서 아우라의 실체가 좀 애매해졌다. 루벤스가 그린 저 여인의 실물과 그 밑의 일반 사람이 잘따라그린 그림,그리고 내가 카메라로 단숨에 복제해버린 이미지는 어떻게 많이 다른가? 미래엔 과거의 스튜디오나 지금의 영화현장처럼 많은 도구나 마이크 거대한 카메라 와 같은 것이 점점 필요하지 않게될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는 너무 빠르고, 그 과정 속 영화 이론이 주목한 장치이론, 영화관 내의 환경과 관객성에 대한 이론 은 벌써 의미가 많이 퇴색되지 않나. 특히 기술과 관련된 이론들은 어려움을 겪는다. 과거 20년대의 세트장을 보면서 거대한 기구들이 존재하지만 이를 삭제하기 위한 framing과 editing이  존재한다고 했다. 맞는 말인데, 그런데 과연 미래에 정말로 눈에 부착되어버린 카메라와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영상 기록기는 리얼리즘의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나. 현실에 그대로 존재하는 경계없는 연기는 프레임없이 전달될 수 있으며, 영화는 네모난 프레임에서 빠져나오게 되었을 때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들어서게 될것이다. 생각만 해도 설레이지만 머지 않았다고 본다. 스크린 혹은 프레임이라고 하는 경계가 사라지고 연기/내러티브와 현실의 경계가 혼돈되고 그 사실 자체가 주는 또다른 attraction/distraction 이 개념은 또 대입은 된다만, 내가 상상하는 미래 영화는 그렇다.
뭐 변함없이 갤러리에 그림은 그 자리에 있을테고, 살면서 유일하게 아우라를 느꼈던 피라미드도 그 자리에 있을 테다.

2014년 11월 19일 수요일

go simple interstella & gone girl

Interstella
Contact+Gravity+sensitivity&imagination
Thank YOU Nolan!

Gone Girl
Better not find her she's bit.....crazy

2014년 11월 18일 화요일

[영화] Gimme Shelter

다시 나도 SNS를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페이스북이랑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하고
블로그는 그냥 아무도 오지 않는 기록용으로
영화 블로그가 되었으면 한다
적어도 다음 귀찮이즘이 몰아치기 전까지는..

Gimme Shelter 1970 

롤링스톤즈의 미국투어를 다룬 Maysles Brothers 와 편집자 샬롯의 다큐멘터리
이 다큐멘터리가 가장 유명한 혹은 꼭 봐야하는 다큐멘터리 목록에 올라간 이유는 의도되지 않은 사건때문일 것이며, 분명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이러한 내용을 담아버린 영상은 결국 히피들의 희망을 저버리는 어떤 비극적인 시선이나 메시지를 담고만다.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사실 분명하지 않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고, 세명의 감독 중 한 명(David) 가 끝까지 주장하 듯 이 다큐는 direct cinema 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 사건을 지켜보는 롤링스톤즈 믹 재거의 리액션이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이 다큐의 의도는 상당히 명확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 사건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롤링스톤즈의 공연 중 한명이 사망하고 거의 세명이 중태에 빠진 일을 말한다

롤링 스톤즈의 격렬한 팬의 죽음 그 원인을 찾고자하는 자연스러운 human nature는 클로즈업된 / 스틸숏의 믹재거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이를 리차드 해밀턴의 Swinging London과 연결시킨 수업이 인상적이었다

다큐수업을 하며 계속해서 나오는 단어는 Truth 그리고 reality 이 영화에는 어떻게 대입될까?



2014년 1월 28일 화요일

Film, 밀드레드 피어스

Everything / shot / cuts / camera movement is motivated by Something

Because it's Chosen 

Internal:external
Interior:exterior
Limit:represent
Influential
Sucess:fail

밀드레드 피어스
Classical Hollywood Cinema
여성이 중심이 된 연대기
마리아 브라운이거나
스칼렛 오하라거나
밀드레드 피어스거나

읊을 수 있을 듯한 대사나 상황은 둘째치고 '욕망'이 어쩜 저렇게 그려질 수 있을까. 
왜 가정을 위해 가족을 위해 희생한 독립적인 여성은 자신의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감에 괴로워 할 수 밖에 없나, 그리고 그 유일한 명분-사랑과 믿음-은 왜 여성의 노력에 뒷통수를 치나, 공허한 성공에 왜 여성은 마냥 행복할 수는 없나, 왜 개인의 행복이라는 가치는 특히나 어머니로서 여성으로서의 행복은 늘 차선에 서야 미덕이 되나, 왜 그 노력을 무의미하게 하나?
그래서 마리아 브라운과도 닮아있고 수많은 연대기의 여성 주인공과 닮아있다. 

2014년 1월 26일 일요일

영화 4 소설1 지구를 지켜라 / frozen / 이터널 션샤인 / 데이지 /인간실격

지구를 지켜라 / frozen / 이터널 션샤인 / 데이지 

네명에게서 추천받은 네편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차마 끝까지 보지 못했고
이터널 션샤인은 중간까지 보다가 낮잠을 자고 나서 끝까지 보았고
그리고 연달아 새벽까지 데이지를 보았다

프로즌은 점심겸 저녁과 함께 보고 들었다

평을 하지는 않고 감상만 쓴다면

지구를 지켜라는 끝까지 봐야 알겠지만,
나에게는 달갑지 않은 그로테스크함이 있었다. 그게 분명 매력적인 부분이 있겠지만 서도...
계속 그 물파스 장면이 생각나 다른 것에 집중이 되지 않아, 신하균이 왜 저러고 있지 싶다가도 ㅠㅠ 지구를 지키기는 무슨 지구에 있긴 너무 위험하다. 실험적이라고 해도 될까?

프로즌은 예쁘고 노래도 좋고 어릴때 보았다면 매일매일 돌려보았을것 같은 디즈니의 공주시리즈 겨울판!! Let it go! 이거 보고 위키드 영상보고 다른 뮤지컬 노래까지 찾아듣게 된다. 뮤지컬 보고 싶다.

이터널 선샤인, 분명 좋은 영화인데 내가 졸렸던게 문제다. 아니면 절절한 로맨스에 대한 공감대가 없어 그런가? 기억 속에서 도망치는 발상이 멋지고, 잊혀지고 무너지고 되돌아가는 여정의 토대가 로맨스라는 것만 빼면 인셉션이나 바닐라 스카이도 생각난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짐캐리와 줄리아 로버츠를 보면서 왜 졸수밖에 없었던 거지?? 우리나라의 정서로 바뀐다면 더 몰입할 수 있었을 지 모른다. 



데이지, 어게인 전지현! 그리고 정우성, 그 둘이 그야말로 아름다워서, 사실은 삼각관계인데, 아니 정우성을 두고?? 심지어는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지닌 순정파 킬러인데?? 아저씨 경찰(이성재)을 기다리는 청순가련 전지현이러니.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이번에 네덜란드에 교환학생온 친구에게 추천해주고 싶었다. 마약, 총성, 순수 로맨스 까지, 몰랐는데 감독이 홍콩사람이구나. 




여전히 영화를 보고 무엇이 좋고 중요한지를 생각하는 훈련이 너무 부족하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을 다 읽었다
사양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2014년 1월 22일 수요일

The Three from the Gas Sation

초기 유럽의 유성영화,
에밀야닝스가 주연하던 독일의 20년대 무성영화는 이미 편집, 카메라 무브먼트 에서 영화를 예술양식으로서 있는대로 발전시킨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The Last Laugh만 하더라도 실험적인 카메라의 활용에 음악과 퍼포먼스까지 어우러지니 지금 봐서도 전혀 지겹지 않은 작품이었다. 재미있게도 그 당시엔 영화로 제작된 작품들이 세계를 넘나드는데 더 자유로웠다. 하지만 유성영화의 시대가 오면서 '언어'가 장벽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유럽의 유성영화가  만약 독일작품이 독일에서 히트하고 프랑스로 넘어갈때 프랑스어를 할 수 있었던 배우들은 그대로 쓰고 다른 배우들은 교체해 가면서 영화를 다시 제작한 점은 특이하다. 그 와중에도 언어가 중요하지 않은 춤추는 장면들은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기는 했는데, 아무리 그러한들 다시 촬영하는데에는 그 나라에 맞는 연기지도자를 새로 고용하는 듯 비용대비 고효율의 방식은 아니었던 모양. 그래도 1930년대의 유럽영화가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버젼으로 만들어졌다는 자체가 흥미롭다. 그때야 말로 언어 능력이 정말 능력이라나 뭐라나.... 아무튼간에 오늘보게된 주유소의 세친구? 번역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뮤지컬과 가벼운 오페라의 중간격인 오페라타..? Operetta 형식을 띈 유쾌한 코미디/로맨스 극이다. 파산 이후 주유소를 하게된 남자 셋 모두가 주유소에 온 한 여인을  좋아하게 되는데, gender identity가 재현된 방식만 해도 상대적으로 멍청하고 우스꽝스러운 남성과 발랄하고 고집있는 여성이 이 시대에서 받아드려진다는 것, 정말로 45년 전 규제가 없던 시대의 영화는 더 발칙하기도 하고 발랄하기도 하다. 

2014년 1월 21일 화요일

화요일 영화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today, 12:35 Leicester Square VUE. 

아무도 광고를 보지 않았다. 좀 늦었다 싶게 들어간 screen 8 은 막 워너브라더스의 로고가 나오는 중이었고, 영화관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어도 영화는 그대로 틀어주는구나 싶었고, 새삼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틀어질 영화도 쓸쓸하겠다 싶더라. 어찌보면 전력낭비지만, 계약한 사항이 있으니 틀어져야겠지? 정말 아무도 안오면 어떻게되는거지? 내가 들어가 앉고 영화가 시작하고 한 이삼분 뒤에 어떤 사람이 한명 더 들어와 앉았다. 그렇게 둘 한가한 화요일 오후에 벤스틸러의 영화를 봤다. 영화는 재미있다.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일상에 무지막지하게 훈훈한 엔딩까지 - 그런데 의외로 그 당연한 엔딩이 찡하다. 히말라야, 그린랜드, 오로라(크레딧..)를 넘나드는 로케이션과 그만한 가치가 있는? 화려한 카메라 앵글, 편집 - 화려한 화면. 이런 말들이 크게 의미가 있을까. 속시원한 화면에서 충족되는 대자연의 경관... Capturing the magnificent landscapes! 그리고 심란한 주말 오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OCN에서 마주하면 만족스러울 만한 스토리가 잘 버무려져있었다! 영화를 만든다면 이런 이야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본다면 이런 이야기가 보고 싶은. 그래서 좋았다! 

2014년 1월 19일 일요일

Il Mare/If Only

뒤늦게 보게된 영화

시월애

이정재와 전지현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지친 주말을 달랠만한 영화를 찾다가 틀게되었고 역시나 좋다. 영화를 있는 그대로 못즐기고 왜 크레딧에 저샷이 색이 앵글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덥잖은 단어들이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 불편하다. 영화 중반에 가서야 침착할 수 있었다. 영화를 분절해서 보면 결국 중요한걸 놓친다 그리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훈련이 부족하다. 이정재가 90년대 말의 멋진 남성 - 와인을 마시고 파스타를 요리하는, 아버지와의 갈등이 있는 건축학도 - 를 연기하고 전지현이 일도 사랑에도 지친 , 심지어는 밀레니엄의 전야에도 만화방 알바 대타를 해주고 있는 ,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지만 그래도 전지현이다. 영화를 보기전에 천송이 역할로 나오는 드라마를 보고나서 봐서 그런가, 아무튼간에 청순하고 예쁘다! 일마레라는 바닷가의 집과 우체통으로 연결된 두 시간 그리고 그 각각의 시간에 사는 남녀, 개인적으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도 떠오르고 시간을 테마로한 작품이야 많겠지만, 과거와 현재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각각의 고민을 들어준다는 점이 비슷하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있을 법한 아날로그적인 판타지를 아름다운 영상이 충족시켜주는! 영화같은 이야기 그런 영화. 종종 또 보고 싶을만큼 좋다

그리고
한편 더
 IF ONLY
나는 슬픈영화라길래 불치병에 걸려서 죽는 이야긴가 싶어 계속 남자주인공이 치매가 아닐까 내내 신경이 쓰였는데 전혀 아니었다. 제니퍼 러브 휴잇이 영화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사랑스러워 진다. 후반부의 깜짝 이벤트는 그야말로 '볼거리'를 배치해놓은 듯.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 정말 펑펑울정도로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를 기대했다. If only 아니면 7번방의 선물을 보려했는데, 이 영화는 울컥하긴 하지만 글쎄다. 또 한편의 런던에서의 영국남자 미국여자 로맨스가 아닌가. 이것도 love~ love ~ love




2014년 1월 17일 금요일

The purple rose of Cairo



The Purple Rose of Cairo 
- 우디앨런 특유의 분위기 - 판타지, 재즈풍 음악, 결말과 로맨스까지 - 를 충분히 가지면서도 뉴욕출신 정신이상자가 나오지 않는 우디앨런의 영화라고(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읽었다) 하는데, 당시 미국의 상황 20~30 년대 대공황, 가난하고 일자리도 없는 사람들과, 카이로의 붉은장미라고 하는 헐리우드식 영화, 현실과 판타지라는 말을 붙여야 하나? 그렇게 거창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사회, 역사에 대한 고려가 있는데, 미드나잇인 파리처럼 또 과거를 향한 향수로도 볼 수 있고.. 판타지보다는 현실을 택하는 세실리아의 결정은 사실은 완전한 판타지나 완전한 현실이 아닌 현실 속의 판타지를 택한건데 결국 저버렸지만..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주인공이 스크린에서 나와버리자 나머지 조연들은 영화를 진행할 수 없으니 잡담에 포커를 나누는 모습! 영화 속 세상과 영화 밖 세상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영화를 왜 보는 걸까? 결말도 알고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될텐데 왜 보고 또 보고 싶어하지? 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더 선호하는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남는! 영화적인 경험 (cinematic experience) 은 여행이나 놀이감 처럼 - 결국 또 영화 초기 영화을 정의하던 cinema as attraction 과도 연결되는 지도??
그럼 또 영화적 현실의 두가지 차원 -1) 리얼리티를 구성하는 stylistic / manipulated/ created reality 와 2) Bazin 의 존재론적 현실 onthological reality 까지 연결될 수 있을까? 



2014년 1월 15일 수요일

2014

이제야 2014년이 시작된 것 같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지난 11월 네덜란드를 다녀온 후로 좀비같은 생활이 어제야 비로소 끝이 났고 '새해'라는 좋은 계기를 삼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조금은 생겼다



*Note
- 영화의 마술사 Georges Melies  The Eclipse 
상상력이 역사가 되는 시기의 더 뛰어난 상상력 

- 에디슨의 Kinetoscope 
동전을 들고 줄지어 '신문물'을 체험하려는 사람들을 상상해본다. 지금으로치면 IMAX/4D 를 경험한 것 같았을까?

- 데이비드 린의 Brief Encounter(1945)
뭐라도 써야했기에 다큐멘터리적(기록영화같은?)인 방식이 접목된 멜로드라마가 주는 영화의 사실적인 표현이 영국의 중산층 계급, 여성의 재현 (representation of class/gender) 과 어떤관계에 있는지 썼지만, 솔직히는 불륜도 로맨스라고 말하고 있는 디테일한 감정표현이 놀라운 영화 그 이상의 감상은 없었다. 연기와 음악이 한 몫 했던 클래식 명작..., 감독이나 그 시대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 쓰여진 관련 논문을 읽는다면 화낼지도 모르겠다.

- 파스빈더 감독의 The Marriage of Maria Braun
반면에 이 영화는 파헤치면 파헤칠 수록 할 말이 많아지는, 토론할꺼리가 많은 영화처럼 느껴졌다. 처음봤을 때랑 두번째 봤을 때 확연히 다르고 대사나 디테일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을 때 또 한번 놀란다. 특히나 마리아가 친구에게 문득 찾아가 웃으면서 이유없는(물론 모두가 그 이유를 아는) 눈물을 흘리는 장면, 처음엔 전혀 들어오지 않았는데 돌려보니까 또 다르게 보인다. 이 영화와 쿠바 영화인 Memories of Underdevelopment 를 가지고 국가의 트라우마를 서술하는 방식을 비교하는 것이 주제였는데, 두 영화다 보고 또 보는 재미가 있더라. 

- 그리고 셜록 시즌3 아직 1화 밖에 못 봤지만 셜록을 보고나서 학교를 가니까 미로같은 학교 건물 뒷편이 셜록 분위기.. 비가 내린 후가 더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