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9일 금요일

[갤러리/ 그림 / 영화] Art and Cinema


시험이 끝났다
발로 썼는지 손으로 썼는지는 모르겠고 정신없는 세시간이었는데 그다지 내용이 알차지는 않았다. 저녁약속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피곤해도 오늘만큼은 집에 일찍들어가기 싫은마음에 잡은 약속이다. 그리고 시간이 남아서 내셔널 갤러리에 왔다. 갤러리는 역시나 생각을 정리하기는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곤할때나 우울할때나 멍하니 생각을 그림과 그림사이에 핑퐁 시키며 적당하게 생각의 흐름에 빠져들 수 있다. 비록 하루의 벼락치기였지만 그래도 어제 공부한 것을 배경으로 그림을 마주하게 되었다. 분명 여러번 온 곳인데 올 때마다 새롭다. 여러번 오긴 했어도 자주 온 곳은 아니라 그럴까. 아니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평소처럼 기억력이 안좋이서? 이유야 뭐든간에 난 이 갤러리에 대해 아는건 별로 없다.
어제 외웠고 오늘 쓴 내용인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이다. 기술복제시대에 예술에서 이 아우라는 사라졌다. 아우라란 원체 복제되지 않은 원래의/진정한 예술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말하는데 영화나 사진의 경우에는 복제되어 대중에게서 소비되는 것으로 그 이전의 예술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이 아우라라는 유일무이한 개념이 의미를 잃게된다. 그런데 나는 내셔널갤러리에서 어떤 그림이 아우라를 가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일단 첫번째는, 음 조금 다른 얘기지만 영화이론에 대해 이야기할때 이론가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예술의 영역을 상당히 단순화시켜버린다. 나는 영화를 공부함으로서 그러한 인식체계에 익숙해졌고 다른 예술과 차별되는 차원 온전한 영화적인 문법이 구사되는 예술로서의 영화 개념을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부분적으로 이는 틀린말이 아니다. 클로즈업, 카메라 무브먼트, 편집 과 같은 것은 영상만이 가지는 고유한 성격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막상 내셔널 갤러리에서 이러한 외침이 약간은 겸연쩍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테이트모던이라면 모를까. 근대화의 예술. 근대의 문명을 살아있는 역사를 가진 미술작품앞에서 논하는 일이 약간은 부끄러워졌다. 맞다. 영화는 인문학의 총아가 될 자격은 있다. 그런데 분명 멈추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동감있게 살아 움직이는 그림들과 프레임화 되어있음에도 상상할 수 있는 off screen space를 그림에서 만나게 되었다. 약간의 틀어진 입술 하늘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그저 그런 종교화를 얼마나 생동감있게 심지어는 발칙하게 만들어주는지 또 새삼 감탄하게 되었다. 바쟁이 말한 것처럼 과연 사진의 탄생은 예술의 두가지 추구방향 중 하나, 현실을 그대로 보존하고자 했던, 를 충족시켰을까. 말도안되는 소리. 그래서 사진은 놀랍지만, 그림 앞에서 소리낼 수 없다. 나는 아직 내 귀가 따가워지고 눈이 즐거워지는 사진을 만난적이 없다. 멋진 사진들이 있지만, 나는 더 멋진 그림들을 많이 만났다. 이것은 개인적 경험임으로 크게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물론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재생산하게 된 것 이 주는 의미도 있을테지만...글쎄.
나는 그리고 그림 앞에 서서 생각했다. 이 것이 주는 감동이 아우라인가? 글쎄다. 재미있게도 나는 그것은 인상이나 impression이나 영감 inspiration일 수 있어도 아우라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셔널갤러리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이명박 닮은 얀반아이크의 작품. 그것은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작품이지만 나는 그것의 아우라를 느낄순 없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아서인가. 상징적인 개념이기 때문일까. 아우라라는 종교적 영적 존재의 근원이 유일성 진정성 원조 라고 해석했으나 나는 그 아우라가 오히려 접근하기 힘들고 멀리 있을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비너스 상을 보거나 반 고흐의 그림을 만난다고 한들 나는 엽서나 사진보다 더 선명한 색감과 생생한 질감에 감탄하고 이래서 실물을 보라고 하는구나 느낄 수 있지만, 많은 경우 그것들은 나의 삶에 의미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아우라라는 것이 잘 다가오지 않는다. 또한 언제든지 접할 수 있다라고 하는 대상의 속성은 아우라를 분명 반감시킨다. 이건 그래서 복제의 개념과도 유사할 것이다. 그런데 또 복제되었다고 하여 고유의 기운은 잃는 것은 아니고, 아무튼간에 생각할 수록 복잡하다.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루벤스의 삼손이 머리카락 잘리는 장면. 색감때문에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지만 스토리를 들었고 표정 하나하나를 보게 되어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인상적이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갤러리를 나가면서 아우라의 실체가 좀 애매해졌다. 루벤스가 그린 저 여인의 실물과 그 밑의 일반 사람이 잘따라그린 그림,그리고 내가 카메라로 단숨에 복제해버린 이미지는 어떻게 많이 다른가? 미래엔 과거의 스튜디오나 지금의 영화현장처럼 많은 도구나 마이크 거대한 카메라 와 같은 것이 점점 필요하지 않게될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는 너무 빠르고, 그 과정 속 영화 이론이 주목한 장치이론, 영화관 내의 환경과 관객성에 대한 이론 은 벌써 의미가 많이 퇴색되지 않나. 특히 기술과 관련된 이론들은 어려움을 겪는다. 과거 20년대의 세트장을 보면서 거대한 기구들이 존재하지만 이를 삭제하기 위한 framing과 editing이  존재한다고 했다. 맞는 말인데, 그런데 과연 미래에 정말로 눈에 부착되어버린 카메라와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영상 기록기는 리얼리즘의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나. 현실에 그대로 존재하는 경계없는 연기는 프레임없이 전달될 수 있으며, 영화는 네모난 프레임에서 빠져나오게 되었을 때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들어서게 될것이다. 생각만 해도 설레이지만 머지 않았다고 본다. 스크린 혹은 프레임이라고 하는 경계가 사라지고 연기/내러티브와 현실의 경계가 혼돈되고 그 사실 자체가 주는 또다른 attraction/distraction 이 개념은 또 대입은 된다만, 내가 상상하는 미래 영화는 그렇다.
뭐 변함없이 갤러리에 그림은 그 자리에 있을테고, 살면서 유일하게 아우라를 느꼈던 피라미드도 그 자리에 있을 테다.

2014년 11월 19일 수요일

go simple interstella & gone girl

Interstella
Contact+Gravity+sensitivity&imagination
Thank YOU Nolan!

Gone Girl
Better not find her she's bit.....crazy

2014년 11월 18일 화요일

[영화] Gimme Shelter

다시 나도 SNS를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페이스북이랑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하고
블로그는 그냥 아무도 오지 않는 기록용으로
영화 블로그가 되었으면 한다
적어도 다음 귀찮이즘이 몰아치기 전까지는..

Gimme Shelter 1970 

롤링스톤즈의 미국투어를 다룬 Maysles Brothers 와 편집자 샬롯의 다큐멘터리
이 다큐멘터리가 가장 유명한 혹은 꼭 봐야하는 다큐멘터리 목록에 올라간 이유는 의도되지 않은 사건때문일 것이며, 분명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이러한 내용을 담아버린 영상은 결국 히피들의 희망을 저버리는 어떤 비극적인 시선이나 메시지를 담고만다.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사실 분명하지 않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고, 세명의 감독 중 한 명(David) 가 끝까지 주장하 듯 이 다큐는 direct cinema 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 사건을 지켜보는 롤링스톤즈 믹 재거의 리액션이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이 다큐의 의도는 상당히 명확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 사건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롤링스톤즈의 공연 중 한명이 사망하고 거의 세명이 중태에 빠진 일을 말한다

롤링 스톤즈의 격렬한 팬의 죽음 그 원인을 찾고자하는 자연스러운 human nature는 클로즈업된 / 스틸숏의 믹재거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이를 리차드 해밀턴의 Swinging London과 연결시킨 수업이 인상적이었다

다큐수업을 하며 계속해서 나오는 단어는 Truth 그리고 reality 이 영화에는 어떻게 대입될까?



2014년 1월 29일 수요일

Matilda


Matilda! 마틸다!
어릴적 어디에선가에서 꺼내온 이름, 시간이 
로알드 달 표지에 그려진 마녀와 이토록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헷갈리게 했나보다.

두시간 반정도 했을까, 너무 짧게 느껴졌다. 
싸게 문화생활이나 해볼까 했던 생각은 
결국엔 5파운드짜리 오퍼를 받지는 못하고 30 파운드에 그걸로 주세요 라고 말했지만 내 옆으로 뛰어다니는 배우들과 마틸다의 눈동자마저 보일듯 한 거리에 만족스러웠다. 다음에 또 보러 올거다. 뮤지컬은 두번씩 세번씩 볼수만 있다면 또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자리나 그날의 기분 관객의 분위기가 경험을 좌우한다는 점이 영화와 또 다르다. 정말로 이런 '극'은 관객을 무대위로 끌어온다. 
노래도 좋았다. 2부 초반에 나온 when I grow up, 선생님의 ...not much but enough, 그리고  명랑한 마틸다의 넘버들, miracle까지. 아직 제목은 다 모르지만 찾아들어야지.
그리고 소름끼쳤던 건, 무대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Abcd를 가르쳐주는 부분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로 창의력과 상상력과 총명함! 'Clever!' 이 가득한 작품이었다.
극의 구성도 대단하다. 뮤지컬은 한끗차로 좋은 노래도 졸리게 들릴때도 있고 난잡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깔끔하게 평행하는 상황들이 마지막에 종결되는 것까지도 멋지다. 엔딩선택도 그렇고, 러시아인만 조금 애매한가? 아니 그 마저도, 연기 노래 무대 구성 연출이 다 맞아 떨어졌다. 유쾌하고 뭉클하고 귀엽고 감동적인 뮤지컬 마틸다.
나의 어린시절을 함께한 로알드 달도 대단하고, 영국도 런던도 ! 정말 확실한 기분전환이다. 다음주는 찰리나 라이온킹을 봐야지. 
마틸다는 그리고 빌리를 보면서도 드는 생각이지만, exceptional한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무대위에서 펼치면서도 조율할 수 있는지 정말로 대단하다. 그건 나이의 차원이 아니라 프로의 세계다. 몇살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그녀들 그들은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를 누리면서 프로로서의 책임감을 다한다.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나도 감동을 받는다.
지금 런던을 오는이에게는 뮤지컬 마틸다를 추천하고 싶다

2014년 1월 28일 화요일

Film, 밀드레드 피어스

Everything / shot / cuts / camera movement is motivated by Something

Because it's Chosen 

Internal:external
Interior:exterior
Limit:represent
Influential
Sucess:fail

밀드레드 피어스
Classical Hollywood Cinema
여성이 중심이 된 연대기
마리아 브라운이거나
스칼렛 오하라거나
밀드레드 피어스거나

읊을 수 있을 듯한 대사나 상황은 둘째치고 '욕망'이 어쩜 저렇게 그려질 수 있을까. 
왜 가정을 위해 가족을 위해 희생한 독립적인 여성은 자신의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감에 괴로워 할 수 밖에 없나, 그리고 그 유일한 명분-사랑과 믿음-은 왜 여성의 노력에 뒷통수를 치나, 공허한 성공에 왜 여성은 마냥 행복할 수는 없나, 왜 개인의 행복이라는 가치는 특히나 어머니로서 여성으로서의 행복은 늘 차선에 서야 미덕이 되나, 왜 그 노력을 무의미하게 하나?
그래서 마리아 브라운과도 닮아있고 수많은 연대기의 여성 주인공과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