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5일 수요일

<시나리오>

#1 
솔직히 얼마나 하게 될런지 자신은 없다. 내일 까먹지 않고 기억해낸다면 그 정도만 되어도 성공이다. 지금 당장 무언가 시작하지 않으면 무료함에 파묻힐 것 같았고 어차피 아껴두어도 의미 없을 것 같아 하루에 하나씩 올려보기로 한다.

#7years 
#Scene1 
#콘크리트 도로

좋은 나이를 맞이한 그녀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한적한 도로, 키의 반절정도 오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그녀는 조금 빨리 걷다가 조금 천천히 걷다 멈추었다 다시 빨리 걷기를 반복한다. 
이어폰을 귀에서 벗자 세상이 시끄러워 졌다. 화려한 간판들도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어느 것 하나 그녀의 흥미를 끄는 것이 없다. 마침 전화가 울렸지만 그냥 받지 않기로 했다.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분위기에 심취해 여배우처럼) 눈을 잠시 감고 생각에 빠지기로 했지만 그것도 잠시. 화려한 얼굴을 하고 천사같은 미소를 짓는 여자와 부딪혀 잠깐의 사색마저 방해받았다. 

아 역시 되는일이 없구나. "쯧"

그녀는 나지막히 혀를 찼다.

2015년 10월 13일 화요일

Suffragette (2015)

https://youtu.be/SUKjwIaTZ4Y
https://youtu.be/-JYzgPPoQf0
Meryl Streep Interview on Suffragette

"Deeds, not words"

영화의 여운보다도 메릴 스트립의 인터뷰가 심장을 때렸다.

세상은 결국 다양한 문법과 언어의 교합물 이다.
그런데 그 언어는 때로는 수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기도 하고, 태어난 순간부터 이유없는 폭력 아래로 내몰기도 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원래 그래왔다고 여겨지던 이 세상의 구조는 사실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변화시킬 힘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사실은 투쟁과 싸움의 결과였음을 말해주었고, 그것이 고작 100년도 되지 않은 역사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내가 집착했던 것이 행동이 아니라 언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데올로기적인 신화를 수반하는 몇몇 단어들에 대한 일차원적인 거부감이
당연한 현상과 행동을 직면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메릴 스트립이 말하듯 - 무언가 틀린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본다.

그러나 변화는 용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의 행동의 시작은 또 다른 행동을 포기를 궁극적으로 수반한다. 포기해야하는 것들과 얻어야 하는 것들의 가치와 사회가 구성해 놓은 책임을 디디고 서서 안개 낀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지난 번 Martian을 보면서도 든 생각이었고, 이 영화에서의 에밀리의 죽음을 통해서도 느끼는 바이지만, 지금의 나에게 세월호 사건과 '절망적이고 희망이 없는' 일련의 사건들은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단 한명의 생존에 세상이 움직이는 서사구조를 보면서 300여명의 학생들과 사람들을 바다 한 가운데에 두고 올 수 밖에 없었던 우리나라와, 그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은 무관심과 짜증으로 바뀌었고, 생명을 저버리면서 까지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항하려 했던 사람들의 '행동'들은 세상의 팍팍함과 이기주의 아래에서 묵살당했다. 지금의 우리나라 사회는 더 이상 행동이 세상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패배주의에 휘감겨있고, 눈에 보이는 부조리는 보이지 않는 척으로 일관하는 것이 당장의 삶에 더 이로울 것이라는 판단에 이르게 한다. 극단이 아니라면 관심없음이 평범한 사람들의 가치가 되고, 평범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용기 없는 사람들의 쉽지 않은 미덕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에 대해 생각한다.
현실적인 어려움이라고 말하는 '말'은 문제에 대한 변화의지가 없다는 말과도 같다.
하지만 무엇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할 필요나 가치는 못 느끼고, 아니 필요나 가치는 실감하지만 내가 나서서할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
나는 지금 어디에 서있는가.

나는 여성 감독이 촬영한 이 영화를 정말로 오래간만에 보면서
미디어가 얼마나 남성중심적인 시선을 (멀비가 말한 그대로!) 관객들에게 강요했는지 깨달았다. 관객에 따라서 이 영화가 다른 영화와 얼마나 다른 시선을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프레임으로) 가지고 있는지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정말로 여성의 영화였다 - 예를 들면 남성과 여성을 촬영하고 있는 level과 앵글의 차이, 일하는 여성이 느끼는 갈등과 감정선의 지점을 표면에 드러내고 그것이 영화를 이루고 있는 주요한 담론으로서 작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역시나 당연한 것이다.
폭력은 정당하지 않다.
당연한 죽음은 없다.
그렇다면 명예로운 죽음은 있는가?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판단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미디어를 비롯하여 대중매체가 사람들의 가치를 보편화 시키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것을 원하도록 만들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소수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재분배되지 않는다.

* 글을 어떻게 쓰는가. 말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나는 최근 몇 가지 중요한 인상과 키워드를 적당하게 버무리는 것으로 '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것의 한계를 매일 매일 어설픈 언어 속에서 실감하면서,
이제는 연결되지 않는 모호한 지점을 파고들어서 그것을 아주 명확하고 엄밀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말이 되는 말'을 하는 것을 언어 사용의 최대의 목표로 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한다면 나는 이제 알맹이가 있는 언어를 사용할 것이라는 말이 된다.
올해 초 나는 비전과 콘텐츠를 찾았고
여름의 나는 문법을 찾았고
지금의 나는 말을 찾고 싶다.
간극을 채우는 것은 궁극적으로 학문이 된다.
안개꽃으로 공간을 채우지 않겠다.
그것이 내가 삶을 대하는 기존의 태도였다면
나는 차라리 그것을 더 명확한 것들의 나열을 통해 비어야 할 공간을 비워두겠다.

** Vote for Women ;
나는 현실의 문제를 눈감고 있는가
반문하라




2015년 10월 11일 일요일

Right Now Wrong Then

2015 BFI London Film Festival,

Right Now, Wrong Then (2015, Hong Sang-Soo)

Cine Lumiere Screening (11/10/2015)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한번에 이 영화의 제목을 맞게 말할 수 있을까.
홍상수 감독의 그 신작 보았어요? 하면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혹은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다? 하며 버벅거리는 '시네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 감독은 이상한 실소를 뿜었을 것 같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그의 카메라에 담긴 것들은 혹은 그가 카메라에 담은 것들은 대부분 위선적이다. 감정을 살려내려는 줌인이 없어도,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없어도, 늘 반복적인 '홍상수'의 플롯 안에서 그는 계속 새로운 것들은 위선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한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그 첫번째와 두번째는 미묘한 지점에서 다르지만 전혀 다른 뉘앙스를 주는데,
그것이 엄밀하게 무엇인지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읽기에는 첫번째와 두번째가 (물론 완전히 다른 촬영이었겠지만) 같은 평행적 상황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읽었고 - 그러니까 다른 이야기는 아니라고 판단했고,
대사의 길이나 속도의 차이역시 보는 사람의 심리에 따라서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하에 나는 그 둘의 '거의 비슷함으로 같다' 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분명하게 다른 것들은, 첫번째 파트는 매우 홍상수다웠다는 것이고 두 번째 파트는 또 다른 홍상수 다웠다는 점이다. 말로 정리하기 매우힘들지만, 1부에서의 남자 캐릭터가 더 익숙했다면 왜일까.

힘들게 상징과 색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고,
외국 관객들과 한국인 관객들이 다른 포인트에서 웃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홍상수의 영화가 좋은 이유는 역시나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웃음 포인트와 분명 어른들의 인생의 어떠한 낮과 밤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의 영화는 기대되고 기대되고

2015년 5월 31일 일요일

Rainbow

Rainbow

무지개 동화

무지개를 보고 동화를 쓰지 않는 것은 무지개를 내려 놓은 하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둥근 아치 모양의 끝은 보이지 않았지만, 가장 높은 꼭대기에서 부터 이야기거리를 잔뜩 들고 줄지어 내려오는 '작고도 큰 것들'이 있었다.
이 '작고도 큰 것들'은 말하자면 요정같은 존재라서, 내가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기숙사 7층에서는 아치 위를 종종걸음으로 걷는 개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동차보다도 큰 제법 묵직한 모양새를 한다.
이 요정같은 것들이 들고오는 이야기거리란 무지개 색처럼 달콤하고 반짝이지는 않지만, 설레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옮기는 얼굴엔 불안감도 가득하니 내가 얼른 무지개가 사라지기 전에 이야기를 하나 빼내와서 대신 적어내려 가기라도 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 생각했다.
무지개와 무지개 요정과 하늘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1
소녀가 태어났을 때 이미 소녀는 혼자였다.
소녀를 돌보아 주는 보모와 수행기사와, 소녀가 가장 사랑하는 폴이 있었기에 소녀는 외로움을 알지 못했다. 싸우거나 귀찮게 굴거나 잔소리하는 부모님이 없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소녀는 생각했다.
소녀는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사용하는 법을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20분, 또 씻는데에는 30분 정도, 식당까지 내려가는 데 7분, 식사하는 데 35분, 일어나서 방으로 돌아오는 건 9분정도로 창문이 난 길을 따라 걸어온다. 보모가 추천해주는 옷으로 갈아입는데 12분 그리고 예쁜 구두를 신고 폴과 함께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걸어 대문을 열 때까지 또 20분. 그렇게 시간을 맞추고 나면 소녀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졌다. 쓸데 없이 보내는 시간이 단 한 순간도 없다니! 아마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야! 소녀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대문을 나선 소녀는 갈 곳이 없었다. 소녀는 태어났을 때 부터 늘 소녀였다. 그래서 어디에 가야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녀는 무료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폴이 기뻐할지 궁리하다가, 점심 메뉴를 보모와 함께 정하고 오늘의 요리를 곰곰히 생각하다.
배우고, 이제는 내일의 계획을 세우면 된다. 소녀는 소녀의 삶이 완벽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자유롭고, 외롭지않고 사랑도 있다면 불필요한 것은 필요가 없다.
하지만 소녀는 그 생각을 너무 자주 했다.
자기 자신이 행복하다고, 그 삶이 완벽하다고, 그 누구보다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소녀는 대문 앞에 앉아 폴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오늘 소녀에겐 두명의 보모와 세명의 수행기사가 있다. 빵을 쥐어주고 다른 대문으로 내모는 소녀의 완벽한 삶이 반복된다.

[2013년 언젠가의 글]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논어 - 인문학 특강

"好學"(학문을 좋아함) 에 대하여 

물음이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시간

論語(논어) - 孔子의 어록과 제자들의 문답을 담은 유교 경전

: 논어를 현대의 맥락에서 그리고 일상 속에서 적용 될 지혜로 이해할 것!

子曰:「學而時習之,不亦說乎?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공자가 말하기를: 
"배우고 틈나는대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여도 노여워하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1 好學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어떻게 매울 것인가? 인간이라면 '배움'을 통하여 채워나간다."
: 유일신 문화 (유일신이 창조하고 심판하는) 에서라면 '믿음'에서 시작했을 테지만, 
만물신과 조상신을 믿는 동양문화권에서는 '사람'을 중요시하여 '學'으로 논어를 시작한다.
(또한 공자 사상이 나를 살찌우는, 자신을 위한 배움(위기지학), 학문을 좋아하는 태도 (好學)를 중요시 함을 옅볼 수 있는 대목이다.)
: 학문은 왜 중요한가? 
"好仁不好學, 其蔽也愚; 好知不好學, 其蔽也蕩; 好信不好學, 其蔽也賊; 好直不好學, 其蔽也絞; 好勇不好學, 其蔽也亂; 好剛不好學, 其蔽也狂"
"인자하기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우둔해지는 것이고, 지혜롭기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까불게 되는 것이고, 믿음직스럽기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자신을 해치는 것이고, 곧기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가혹해지는 것이고, 용맹스럽기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난폭해지는 것이고, 굳세기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무모해지는 것이다."
"사랑을 앞세우면서 배우려 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짓을 하고, 지혜를 앞세우면서 배우려 하지 않으면 제멋대로 굴고, 믿음을 앞세우면서 배우려 하지 않으면 상대를 다그치고, 정직을 앞세우며 배우려 하지 않으면 혼란을 부추기고, 강직함을 앞세우며 배우려 하지 않으면 통제 불능이 되는 것이다." 
: 배움이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는가에 대한 통찰이자,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배우지 않아 생기는 어리석음에 대한 통찰. 
: 삶이 고비를 넘는 일이 힘들고 불안하기에 이에 집중하게 되는데 삶을 넓게 보면 삶이란 고비를 넘은 다음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신정근 교수) 

#2 정치 "近者說遠者來" 근자열원자래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은 오게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나라의 정치와 백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 관계 전반에 걸쳐 적용 될 수 있는 것으로. 사람이란 무릇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뻐하도록 멀리 있는 사람은 절로 와 머무르게 하도록 하였을 때 군자 됨이 아닌가.
: 자신을 갈고 닦아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공경스럽게 대하면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스스로 적용자가 되고 예외자가 되지 않는 것. <-> 포퓰리즘 ; 대책 없는 텅 빈 말. 
: "도움을 주지만 낭비하지 마라. (필요에 따라 주어라) 힘들게 일을 시키지만 원망을 듣게하지 마라. 욕심이 있어도 탐욕을 부리지 말고, 느긋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위엄을 차리지만 사납지 않은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멀리서도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워 한다면 위엄이 있지만 사납지 않은 것이다."(군자는 의관을 정제하여야 한다. 위엄있지만 사납지 않고,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다.) 

#3 恕 다른 이를 받아드리는 방법 (관용/용서)
: 나의 평생의 좌우명이자 삶을 사는 지혜로 여기는 역지사지가 이 단어안에 있다. 
: "새 출발을 하려면 도우면 되지 물러나려면 내버려 두라. 과거 때문에 받아드리지 않을 필요가 없다" 사회적 편견과 신분을 떠나 '사람'이라는 공유지대에서 만나다. 나의 공유 지대에 누군가를 불러 오는 일이 결국은 사랑이 아닌가?
: Golden Rule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이에게 하라. 다른이가 나에게 시키지 않길 바라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 
But, 극단적 프라이버시/개인주의 (내가 너에게 관심을 끌테니 너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마라) 혹은 가학증 (너도 맞는 것이 좋다면 나도 맞아도 좋다 - 피해의 거래가 성사) 로 오용, 낙용될 수 있다.
관용 : 나와 다르더라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받아드릴 수 있다.
갈등의 이유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된다. '서'가 이루는 세계는 그것이 인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환대하는 세상 신뢰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공유지대로 타인을 초청한다. 
: 온양공검양 (온화하고, 착하고, 공손하고, 검소하고, 겸양하니까 저절로 그렇게 된다.)
: 욕심은 에너지이자 원동력이 되지만 탐욕은 자신을 파괴한다. 탐욕을 경계한다. (계탐도) 탐을 넘지 못하면 '서'로 나아갈 수 없다. 


참고 : EBS 신정근 교수 인문학 특강 1, 2, 3강 

201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