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0일 금요일

[일상] 데일리 칼럼 - 나르시시즘




어느 시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막 잠에서 깨어 밍기적 거리며 하루를 계획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오늘의 나를 깨운 것은 머릿속의 노래나 꿈은 아니었고 소설의 한 구절로 "싫은데서 끝나지 않고 저항했다면" 하는 말이었는데, 거울과 사진 속의 이상적 자아와 끊임없이 동일시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싫음이 요 근래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분명히 나르시스트로 인간 관계나 자기애적 장애를 겪고 있을 것이다. 모든 순간이 그러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거울을 보다가 위안을 얻게되는 몇몇의 순간들이 그러하다. 나의 "싫음" 은 이상적 자아와의 괴리에서 오는 싫음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답답하게 살고 있으며, 왜 그러한가에 대한 고민에 그 기원이 있는데, 이를 극복한 어제의 생각은 "나는 나로서 존중받길" 이었다. 타인에 의한 존중과 나에 의한 존중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 될텐데, 나는 애초에 이러한 방식으로 태어났으며, 사람은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있고, 나는 그렇게 다양한 종류의 사람 중 하나로서 누군가가 보기엔 차갑고 답답하고 울타리가 있다고는 하나 그렇기엔 내 스스로는 정과 사랑이 많고 밝거나 유쾌한 사람이 되는 일을 바라는 것은 약간은 욕심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아마 목적성이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고, 그것이 사람을 유쾌하고 호감인 사람으로 만드는 무엇인가 일텐데, 그 것을 어설프게 따라하느니 나는 그저 나의 길을 담담하게 고수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러한 사람들은 제법 많아서, 세상 사람들을 몇등분을 하면 내가 속할만한 카테고리가 존재라는데 지금의 나는 그러한 카테고리에 속하지 못하고 다른 카테고리에서 헤엄치다 보니 쉽게 지치고 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하게 사람이 많은 문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때로는 나와 비슷한 사람에 대한 갈증이 있다가도, 아니야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서는 내가 싫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거나 참 어울리기 힘들고 갑갑한 사람이네 라고 하는 생각이 무심코 들어버리기 때문에 오래 함께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늘 밸런스가 중요하다. 그리고 잉렇게 나의 관계를 정의하고 나의 삶을 기록하고 그러한 나 자신과 나의 생산물에 무한한 애정을 주는 나 스스로는 분명히 나르시스트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